🔮 Rim & Roe/본편

Epilogue/ I)r4IVI4+1c Reunion

RiELL 2023. 4. 9.

(ASMR)

# 노을지는 늦은 오후, 황량한 바닷가의 모래밭

로블의 망자의 숲과 림 사이에 있던 바닷가의 황량한 모래밭에 엘더 혼자 쓸쓸히 서 있다. 철썩이는 바닷소리와 함께 바닷바람에 날아오는 메마른 나뭇잎들이 그 쓸쓸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엘더 : (조심스레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간섭이 점점 더 심해지는군.

 

잠시 흐린 하늘을 바라본 그 순간, 매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 : (한탄하듯이) ...기어코, 이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군.

 

엘더, 뒤를 돌아보자 그와 감쪽같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듯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 :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서로 마주하게 된 건, 상당히 오랜만이군.

엘더 : (눈을 가늘게 뜬 채 상대를 바라보며) ...오랜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침략 작전을 실행했던,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막으려는 목적이 부여되었던 그 시점부터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입니다만.

 

노인,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온다. 노인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오른손의 반대쪽 왼손에는 칼날이 달린 총이 들려있다.

 

??? : ...상당히 많은 일을 처리해 주었더군.

엘더 :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각오하고 있다는 듯 가만히 서 있는다) .....

??? : ...공격 옵션을 꺼 두어 딱히 공격받거나 무고한 사람을 공격할 일은 없었으니, 일 처리 하나는 제대로 해냈겠지. 그나마 내가 만들었던 얼터 에고들 중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던 것이니까. 허나-

 

노인, 들고 있던 총을 엘더에게 겨누자 큰 파열음이 들린다. 그와 동시에 엘더의 오른쪽 어깨의 형태가 불안정해지면서 조각조각 흩어지기 시작한다.

 

 

엘더 : (고통이 느껴지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

??? : ...난 네게 독 속성 마법사 세력에서부터 시선을 돌려달라는 명령을 내렸다. 네가 그들의 신경을 흩뜨려놓을 동안, 내가 직접 수장과 그의 잔당들을 해치우기 위해서였지.

 

노인, 자신의 절뚝이는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가 오른쪽 다리를 뒤로 내빼며 다시 말을 잇는다.

 

??? : ...그러나, 넌 내가 부탁했던 것을 넘어 벌써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함부로 새로운 관계를 맺었더군. (괴로운 표정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인연을 맺었다가 서로 영원한 상처를 얻는 건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지.

엘더 : (오른쪽 어깨의 형태가 불안정한 모습으로 쪼개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

??? : (체념한 듯이) 나에게 더는 살아갈 이유 따윈 없다. 너도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그마치 500년간을 발버둥쳤다.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꽉 쥐며) 그녀를 되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 온갖 연금술도 시도하면서 고군분투했지만 결국은 주변에서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았고, 그녀의 마지막 부탁이라도 들어주기 위해 목숨을 걸어가며 림을 지켜내려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영영 사라져버렸다.

 

노인, 떨리는 손으로 총을 장전해 엘더를 향해 겨눈다.

 

??? : 난 누구 한 명이라도 엮이는 이 없이 조용히 혼자만의 생을 끝내려 했다만, 네가 계속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면 나도 어쩔 수가 없군. (떨리는 숨을 한 번 몰아쉰다.) ...더는 살아갈 이유는 없기에, 널 제거하고 나도 이만 영원한 지옥과도 같았던 지긋지긋한 1900년간의 삶을 끝내려 한다.

엘더 : (노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모자를 앞으로 살짝 눌러쓴다.) ...

엘더(眞) : (방아쇠를 당기며) ...50년 간의 짧은 삶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나의 얼터 에고.

 

찢어질 듯한 거대한 총소리가 들리자, 얼터 에고의 왼쪽 얼굴의 형태가 부서지며 흩날리기 시작한다.

 

얼터 에고 : (살짝 합선된 듯한 목소리로) ...꼭, 그런 비참한 선택을 해야겠어?

엘더(眞) : (어디선가 들어본 귀에 익은 목소리에 놀라며) ....이 목소리는...?!

 

깨어져 가는 얼터 에고의 모습이 뒤섞이며 새로운 형태의 사람이 나타난다. 상대의 속마음을 금방이라도 꿰뚫어볼 듯한 날카로운 눈매, 굳게 다문 입, 하나로 묶었지만 여러 갈래로 삐져나온 빛바랜 보랏빛 머리카락을 한 여성의 모습.

 

 

위즈 : (천천히 눈을 뜨고 엘더를 바라보며) ....오랜만이야, 영감.

엘더 : (소스라치게 놀라며) 위, 위즈?!

위즈 : 영감, 정말로 그런 슬픈 선택을 해야겠냐고 내가 물었잖아.

엘더 :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며 굳어버린 채) ....아니..... 어떻게.... 네가....

위즈 : (침착하게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펴며) 내가 죽기 전에 나의 영혼을 반쯤 쪼개어내어 영상석 속에 담은 적이 있었거든. 영감이 당시 영상석에 관심을 많이 보였기에 혹시 몰라서 말이야. 나는 줄곧 너와 함께 있었어.

 

엘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다.

 

위즈 : (지그시 눈을 감으며) ...미안해, 영감. 네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해버렸고, 나를 위해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나 또한 슬픔도 헤아릴 수 없었어. 끊임없는 후회만이 있었을 뿐이었지. 지금까지 긴 세월을 살면서 쌓아왔던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전부 무너졌으니까.

엘더 : (눈물을 흘리며) 위즈, 정말 미안해. 결국 네가 그토록 원했던 림을 지켜내지 못했어.

위즈 : (격려하듯) 괜찮아, 영감. 영감은 날 위해 용감하게 싸워주었고, 난 영감이 최고로 자랑스러운걸.
엘더 : (고개를 들어 위즈를 바라보며) 하지만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내게 남은 건 이제 아무것도 없는걸.

 

위즈, 살짝 뒤를 돌아본다.

 

위즈 : (림이 있었던 바닷가 너머를 바라보며) ...내가 그동안의 임무에 있었을 때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던 건, 그동안 영감이 너무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었어. 그동안 혼자서 무너진 가문을 일으키고 림을 지켜내느라 외롭게만 지내왔잖아. 난 영감이 외톨이로 남는 것이 싫었어.

엘더 : (떨리는 목소리로) ...그...그럼, 지금까지 나를 도왔던 건.....

위즈 : ...이젠 세상이 달라졌어, 영감. (엘더를 향해 미소지으며) 이젠 그 누구도 차별하거나 미워하지 않아. 그들은 오히려 당신과 새로운 소중한 인연을 맺고 싶어 찾아오고 있어. 그들에겐 네가 필요해. 너에게도 그들이 필요하고. 그들은 널 환영하고 있어. 그러니, 그들에게 가 봐.

 

위즈의 영상이 엘더에게 다가간다.

 

위즈 : (엘더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내 부탁 하나로 그동안 정말 힘들게 해서 미안해. 영감의 헌신은 절대로 헛되지 않았어, 그 과정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는걸. 림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난 정말, 정말로 기뻐-....

엘더 :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며) ...위즈...

위즈 : (몸의 형태가 점점 일그러진다) ...아쉽지만... 이제 이 영상석에도 한계가 온 것 같아.

엘더 : (절박하게) 떠나지 말아줘, 위즈...! 네가 없으면 난...!

위즈 : (살짝 미소지으며) ....괜찮아, 영감. 이제 영감은 더는 혼자가 아니고, 앞으로 모든 일이 잘될 거야. 이건 칼린의 예언자이었던 나의 감이야. 아, 그리고 나는 영감의 꼭두각시가 완전히 사라질 때만 모습이 나타나도록 설정되어 있었으니까, 날 다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 

엘더 : ....!!

위즈 : (노이즈가 점점 더 심해진다.) ...더 이상은 오래 있을 수 없으니까,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할게.

 

위즈의 영상이 엘더를 부드럽게 껴안는다.

 

위즈 : ...평생,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사랑했던 영감에게, 앞으로 영원히 네 마음속에 함께 할게. 내 사랑, 엘더 워커.

 

위즈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영상이 엘더를 한 번 휘감고는 사라진다. 엘더, 한동안 넋을 잃고 허공을 바라보다 모자를 벗은 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엘더 : (위즈의 모자를 끌어안고 오열하며) .....위즈... 그동안 정말로... 고마웠어....!!

 

멀리서 실낱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 :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과 함께해주는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지만 그 목소리는 한 노인의 울음소리에 묻혀 그 소리를 들은 이는 없었다.

하늘을 잔뜩 메우던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다시 나타난다.

 

조명 페이드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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